황궁 서쪽에 자리한 아카사카는 도쿄의 역사와 지형적 특징이 응축된 거리이다. 기복이 많은 지형으로, 대지 위에는 에도 시대(1603~1868년)에 다이묘(지방 영주) 저택이 늘어서 있었고, 근대에 들어서는 황실 시설과 대사관이 세워졌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바와 나이트클럽이 모여드는 어른들의 거리로 활기를 띠었으며, 요인들이 드나드는 요정(料亭)도 번성했다.
1990년대에는 방송국과 극장도 더해져 아트·컬처 발신지로서의 면모도 갖추게 되었다. 전통적인 정취와 현대적인 매력이 조화를 이루는 아카사카에서 도쿄의 변천사를 느껴보자.
호텔 뉴오타니의 일본정원
1964년 도쿄 올림픽 개최에 맞춰 개업한 이 호텔에는 현대적인 빌딩군에 둘러싸인 일본 정원이 있다. 약 400년 전 무가 저택이 있던 자리로, 2차 대전 이후 호텔 창업자가 황폐해진 정원을 정비했다. 옛 모습을 간직한 석등롱과 붉은빛을 띤 인상적인 정원석, 가레산스이(고산수) 등이 어우러진 정원은 방문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숙박객이 아니어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소토보리도리 거리를 따라 늘어선 빌딩 사이로 우뚝 선 대형 도리이 (신사 앞 기둥 문), 그 뒤로는 울창한 숲이 펼쳐진 고지대. 이곳이 바로 에도 시대, 일본을 다스린 도쿠가와 쇼군(장군) 가문과 에도성을 수호하던 히에 신사이다. ‘호모쓰덴(보물전)‘에는 도쿠가와 가문과 관련된 귀중한 도검 컬렉션 31점을 소장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전시가 교체되기 때문에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곳은 산의 신을 모시고 있으며, 원숭이가 신의 사자라는 점에서 고마이누(사자상) 대신 ‘고마사루(원숭이상)’가 놓여 있는 것도 독특하다.
┃소토보리도리 거리 쪽에는 커다란 산노도리이와 양옆에 상하 에스컬레이터가 있어 편하게 경내까지 올라갈 수 있다.
아오야마도리 거리를 따라 시부야 방향으로 걷다 보면, 유리 벽과 나무 질감이 인상적인 부채꼴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6세기 전반 교토에서 문을 연 화과자점 ‘도라야다. 고요제이 천황 재위기(1586-1611)부터 황실 납품을 맡아왔으며, 19세기 후반 천도와 함께 교토 점포는 그대로 유지한 채 도쿄에도 진출했다. 아카사카에서는 140년 넘게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画像提供:株式会社 虎屋
대표 상품인 양갱을 비롯해 계절마다 다채로운 화과자를 선보인다.
画像提供:株式会社 虎屋
┃3층 찻집 ‘도라야 카료’에서는 아카사카 어용지의 녹음을 바라보며 디저트와 생과자, 말차 등을 즐길 수 있다.
굽이진 작은 미로 같은 모토히카와자카 언덕길을 오르면 아카사카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아카사카 히카와 신사가 나온다.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이곳은, 18세기 전반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명으로 현재 위치에 신전이 세워졌다. 그 후 수많은 지진과 전쟁 피해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무사히 남아, 건립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도쿄도의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한적한 주택가 속에 자리 잡고 있어,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으며 들러보기 좋은 곳이다.
┃매년 9월 열리는 ‘아카사카 히카와 마쓰리 축제’에서는 화려한 신여와 축제용 수레가 아카사카 거리를 행진하며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