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센토(공중목욕탕)이 가져다주는 웰니스 효과
센토는 대대로 그 자리를 지켜온 가족에게도,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집의 연장선’ 같은 존재이다. 나는 센토에 들어설 때, 그 공간과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나눈다는 마음으로 문을 연다. 그것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말없이도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조용한 공감일 수도 있다.
센토는 대대로 그 자리를 지켜온 가족에게도,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집의 연장선’ 같은 존재이다. 나는 센토에 들어설 때, 그 공간과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나눈다는 마음으로 문을 연다. 그것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말없이도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조용한 공감일 수도 있다.
최근에 문득, 처음 센토를 다니기 시작했던 무렵을 떠올리며, 이런 사소해 보이는 교류가 내가 센토에 깊이 매료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8년, 막 센토에 익숙해질 무렵, 단골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 해보았다. 당시에는 일본어가 아직 서툴렀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말이 완벽하게 통하지 않아도 마음의 교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같은 시간대에 센토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단골 손님들과 얼굴을 익히게 되었다. 그분들은 내 얼굴을 기억해 주었고, 갈 때마다 말을 걸어 주거나 다른 단골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그 센토의‘목욕 친구’의 일원이 되어 갔다. 국적의 차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탕 안에서는 불필요한 꾸밈을 벗어던지고 모두가 같은 인간으로 돌아간다. 그 자연스러운 평등함이 대화와 교류를 만들어낸다. 처음 만난 사람과의 대화도 있고, 친한 친구와 나누는 솔직한 이야기도 있다. 센토는 사람이 가면을 벗고, 진짜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장소라고 느낀다.

일본 각지의 센토를 돌아다니며, 나는 점점 ‘센토의 이면’을 더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집 근처 센토를 운영하는 부부에게 부탁해, 일주일에 몇 시간만 일을 돕게 되었다. 내 역할은 주 2회, 밤 시간대에 두 시간 정도 카운터에 서는 일이었는데, 어느새 그 일을 6년 동안 이어오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센토의 ‘얼굴’이 되어 손님을 맞이하고 안내하며, 때로는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도 했다. 그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센토가 많은 사람에게 ‘신뢰의 장소’라는 사실이었다. 오랜 세월 같은 가족이 이 공간을 지켜오며 지역의 중심으로 자리해 왔기에, 지역 주민들과 깊은 신뢰가 쌓여왔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절이나 신사에서 참배하며 마음을 가다듬듯, 센토에서도 조용히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다.
처음에는 카운터에 외국인인 내가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단골 손님들이 조금 놀라거나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거부감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센토 가족이 이 사람을 믿고 맡겼으니 괜찮겠지’하고 생각해 주신 것 같다. 심지어“아드님 며느리인가요?”라고 오해하는 분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점점 내 존재는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고, 어느새 손님들이 일이나 가정 이야기, 작은 고민이나 기쁨을 나누거나, 최근에 산 옷에 대해 의견을 묻기도 했다.
센토에서의 ‘커뮤니티’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센토가 보급되기 시작한 초기부터 사람들은 청결과 편안함을 위해 모여들었고, 그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센토를 운영하는 가족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유대감이 생겨났다. 매일 찾는 장소이자 동네 사람들과 만나는 공간이었던 센토는, 비유하자면 프랑스의 ‘빵집’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다만 센토는 그보다 훨씬 더 친밀하고 따뜻한 공간이다. 단순한 ‘서비스의 공간’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교류의 장’으로 발전했다. 에도 시대(1603~1868년)에도 공중목욕탕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의 장소였다고 하며, 그 정신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센토에서의 ‘커뮤니티’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센토가 보급되기 시작한 초기부터 사람들은 청결과 편안함을 위해 모여들었고, 그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센토를 운영하는 가족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유대감이 생겨났다. 매일 찾는 장소이자 동네 사람들과 만나는 공간이었던 센토는, 비유하자면 프랑스의 ‘빵집’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다만 센토는 그보다 훨씬 더 친밀하고 따뜻한 공간이다. 단순한 ‘서비스의 공간’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교류의 장’으로 발전했다. 에도 시대(1603~1868년)에도 공중목욕탕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의 장소였다고 하며, 그 정신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는 센토를 ‘정보 스테이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온 사람이 근처 센토를 찾으면, 단골손님이나 주인에게서 지역의 온갖 정보를 들을 수 있다. 대부분의 센토 주인은 그 동네에서 태어나 평생을 센토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먼저 그 지역의 센토를 찾는다. 여행의 피로를 풀어줄 뿐만 아니라, 현지 맛집이나 볼거리를 알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목욕을 마친 뒤, 현지인에게 추천받은 식당으로 향하는 것이 나의 즐거움 중 하나다.
나는 센토를 ‘정보 스테이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온 사람이 근처 센토를 찾으면, 단골손님이나 주인에게서 지역의 온갖 정보를 들을 수 있다. 대부분의 센토 주인은 그 동네에서 태어나 평생을 센토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먼저 그 지역의 센토를 찾는다. 여행의 피로를 풀어줄 뿐만 아니라, 현지 맛집이나 볼거리를 알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목욕을 마친 뒤, 현지인에게 추천받은 식당으로 향하는 것이 나의 즐거움 중 하나다.
센토를 더 깊이 즐기고 싶다면, 이전에 소개한 ‘센토 매너’에 관한 글도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